어제 종로에서 '파괴된 사나이'를 봤습니다. '기대가 안 된다'라고 Reignman님 리뷰를 보고 생각을 했지만, 그새 까먹고.. '범죄영화'인데다 김명민씨와 엄기준씨가 출연해서 보기로 했습니다. 네, 그래서 좀 낭패였던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칭찬할 기운이 나질 않아서, 본래는 블로그에 직접 쓸 땐,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나옵니다만, 딱딱한 문장으로 쓰겠습니다.
1) 공포영화인가?
시종일관 관객들을 '소리'로 놀래키는 '파괴된 사나이'
소리 하나는 참 잘 가지고 논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열심히 피튀기는 장면들을 끼워 넣어, 자주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감독의 차기작은 '공포영화'가 되어야 마땅하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등장인물이 앞으로 하게 될 행동을 궁금하게 하고, 기다리게 만들지는 못하면서 '버럭' 큰 음향을 투입해 '펄쩍' 뛰게 만드는 기술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다만, 장르를 잘못 선택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 장르영화는, 해당 장르영화만의 특색이 '최소한' 살아 있어야 하는데, '스릴'이란 건 눈꼽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보기 드물게 하품이 나오는 '유괴 영화'.
2) 연출이 아쉽다.
나는 스토리가 조금 시시해도, 연출이 좋으면 만족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영화니까. 영화적으로 좋으면 좋은 거다. 그렇지만 그냥 이야기를 늘어놓기만 할 경우, 그 이야기마저 재미없을 경우는 스토리도 연출도 다 용서할 수가 없다. 더 재미있어질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재미없게 만든 건, 순전히 '감독'의 책임이다.
3) 이 영화는 헐리웃 키드, 충무로 키드의 작품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란 영화가 있다. 독고영재와 최민수가 출연하고 정지영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가 열심히 만들어낸 영화, 알고 보니 이런저런 헐리웃 영화들의 짜깁기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도 많이 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생각해 낸 것처럼, 기억이 왜곡되어버린 거다.
이 영화도 그랬다. 그 놈 목소리도, 추격자도, 아메리칸 사이코도, 세븐데이즈도, 랜섬도 생각나는 영화였다. 온갖 유괴영화, 나쁜 놈 영화는 다 생각났지만, 어줍잖은 흉내에 불과할 뿐! 감독만의 스타일이 없었다. 그저 잔인함에 대한 '아이디어'만 톡톡 튈 뿐이다. ('목포는 항구다'를 보면, 이런 저런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나름 재미는 있었다.)
파괴된 사나이 스틸컷
3) 새롭지 않은 캐릭터
김명민의 연기는 역시 멋들어졌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김명민이 연기한 캐릭터(주영수)가 새롭지 않았기 때문.(웬지 복수는 나의 것도 생각난다) 엄기준이 맡은 '최병철'이란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최병철'은 납득도 되지 않는 캐릭터다. 그가 유괴를 해서 돈을 버는 목적이 뒷부분에 드러나는데, 8년씩이나 '잔혹한 범죄' 행위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 실로, '허무개그'에 버금가는 뒷부분.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었다. (그가 정말 잔인한 놈이라면, 8년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엄기준은 '시트콤'에서의 연기를 보고 '급호감'을 가졌기 때문에, 늘 기대를 하고 이는 배우,이지만 여전히 그의 연기는 어딘가가 아쉽다. 차가운 표정과 눈빛은 영화에 적절하게 매치가 되었지만 그 이외의 연기는, 역시 '어딘가가' 아쉽다는 느낌. (사실은 이런 영역들도, 감독의 연출력 부재가 원인인 경우가 많으므로, 여전히 연출이 아쉽다.)
4) KBS 드라마시티 '틈' vs '그 놈 목소리' vs '파괴된 사나이'
예전에 '그 놈 목소리'가 개봉되었을 때, 아마도 개봉일에 가서 봤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여배우가 너무 울어서였던 것도 같고, 감독이 너무 '슬퍼하라, 슬퍼하라' 주문하는 것 같아서 불편해서였던 것도 같지만, 영화의 엔딩에 비해 아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물론 볼만한 영화이긴 했다. 잘 만든 영화이기도 했다.
KBS 드라마시티 틈
이 영화를 보고 얼마 뒤에 KBS 드라마시티 '틈'을 봤는데, 오히려 이 단막 드라마가 훨씬 더 재미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괴'를 소재로 다루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아이'가 유괴되는 게 아니다. '아이'의 유괴가 '상관'은 있지만, 이야기의 주요 골격은 '할머니가 유괴되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매력적인 희생자는 '약자'다 그래서 '아이가 유괴된다'는 것은, 관객에게 큰 호기심을 유발한다. 아이, 특히 어린 여자아이는 가장 매력적인 '희생자'다. 누구라도 그녀를 되찾고 싶어진다. 약한자를 보호하고 싶다는, 인간 본성 때문이리라.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살만큼 산 노인, 그것도 구두쇠 할망탱이가 유괴된다. 일수나 찍고 다니는 할머니, 시장통 사람들은 외려 반길 것이고 자칭 '발명가'로, 투자만 받으면 대박을 칠 수 있을 거라고 단단히 믿고 있는 하나뿐인 '손자'는 저절로 꽁돈이 생길테니 외려 안 나타났음 좋겠다 싶을 거다. 없어도 그만인 것 같아 보이는 노인의 '유괴사건'을 다룬 이 드라마는, 철없는 '손자'의 감정 변화/캐릭터 변화가 아주 매력적인 드라마다. (그 철없는 '손자'역을 맡은 김흥수는 이 드라마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난 뒤론, 한국의 상투적인 '유괴 영화'가 죄다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괴된 사나이'는 매력적인 부분을 많이 갖고 있다. 다만 좀 더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것: 그게 아쉽다. 매력적으로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살리고 쳐낼 부분은 쳐냈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 된 영화였다. 무엇보다 영화적으로, 앞으로 나올 씬을 예상하게 만드는 '상투성'은 이 영화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그래도 난, 이 영화를 봤을 거다. '유괴 영화'니까. 한때 유괴영화만 죽어라고 찾아봤던 적이 있는데, 여전히 나는 '유괴 영화'를 연구중(?)이다. 해마다(혹은 한 해 걸러, 한 해씩이라도) 유괴영화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과거와 같은 영화라면- 과거의 재미를 능가하지 못하는 영화가 계속 만들어진다면, 관객들은 '유괴 영화'자체에 대해 완전히 흥미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항상, '전 보다 나은' 오늘의 영화/내일의 영화를 고민해야 할 것.
1. 역시 자동차 추격씬은, 우리나라에선 '최동훈 감독'을 따라올 자가 없는 듯. 이 영환, 정말 '스릴'이 없었다. ㅡㅡ;;;; (아, '의형제'의 장훈 감독도 자동차 추격씬 잘 찍는 듯....했었던...것도...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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