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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동주, 2016

영화 리뷰/한국 영화

by 사라뽀 2023. 4. 2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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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포스터

 

픽션인 이야기나, 빠진 이야기가 많아서였는지

영상과 어우러진 서정미에 비해 영화가 시적이진 않았던 까닭이었는지

사람들이  칭찬해마지 않았던 말들에, 갸우뚱하였습니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러했던 것인데 마지막 부분 즈음에서,

"일본의 열등감"을 구구절절 말할 때,

왜 동주여야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동주,

독립운동에 온전히 투신하지 못했던 시인의 열등감에 대비되는,

아시아인이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부끄러움을 모르던 악행을 대비시킨 시도는, 

분명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뒷부분의 장황한 대사로 전체 영화의 주제를 황급히 전해주려 했던 것이 앞부분의 서정성과는 뭔가,

안 어울렸다고 해아 할지,

뭔가 들뜬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도, 대학교도 다 재수로 붙은 시인,

남을 위해서라면 차고 있던 시계라도 벗어주던 착하디 착했던 남자,

고등학교 시절, 윤동주 평전을 읽으며 저는 詩란 그렇게

착하디 착하고 맑디 맑은 것이라고 느꼈더랬습니다.

인간적인 것이라고 느꼈더랬지요.

 

윤동주라는 사람보다, 이 영화는 역사를 더 많이 담았습니다.

그게 제가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윤동주는 서정시인이라기 보단 독립운동가였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듯이,

저항하던 그의 작은(?) 일상들을 나열하면서

동주라는 인물에 역사란 옷만을 덧입혀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동주를 통해 말을 하고 싶었던 작가와 감독 덕에 이 영화에 詩는 없었지만은

(이 영화는 詩를 얘기하는데, 온전히 산문의 형식으로 말합니다)

작가의 관점, 통찰력에는, 박수를 건네고 싶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계의 모든 어른들과 부끄러움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어떤 역사의 주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왕에 이렇게 된 김에,

윤동주 詩나 읽을까,

정지용 詩나 읽을까,

한참을 궁리했더랬습니다.

 

ps.

좋은 대사들이 많았습니다.

저의 투정은 다만,

詩적이지 않은 영화인 게 아쉬워서였을 뿐일 겁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저만의 욕심이겠죠.

 

ps.

'동네의 사생활'이란 TV 프로그램에서

일본에서 윤동주가 다녔던 대학교에 방문했을 때, 다니엘이 '새로운 길'이라는 시를 읽어줬는데

저는 학창시절 무척 좋아했던 윤동주의 시, '길'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땐 그저 제가 '잃어버렸던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저 그런 이유로만 그 시를 좋아했었는데

이 시가 정말로 멋진 시라는 것을, 그의 다른 시 '새로운 길'이란 시를 듣다가 깨달았습니다.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세어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년 9월 31일


 

2017년 즈음? 네이버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수정없이 다시 여기 올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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