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케이스] 드라마 소개
"콜드 케이스(Cold Case)"는 필라델피아 강력계(살인사건팀) '미해결사건반'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수사극'입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꽤 장수한 범죄수사물이었습니다. 주인공 Lilly Rush 역을 맡은 Kathryn Morris의 깊이감 있는 연기와 다소 어두운 캐릭터가 이 드라마의 큰 줄기를 끌고 갑니다. 그 외에도 릴리의 파트너 스카티 발렌스(Scotty Valens/Danny Pino)와 든든한 반장님 John Stillman(John Finn), 인간적인 형사 Nick Vera(Jeremy Ratchford) 등 정감 가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해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이죠.
이 드라마 방영 당시,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 없는 미국의 사법제도'를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단서만 있다면 범인이 다 늙은 노인이 되어도 잡아서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제도. 사람을 죽일 정도의 잔혹한 죄를 지었다면,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그들의 인식이 무척 부러웠었죠. 우리나라도 살인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다행입니다.
고독한 여자 형사, '릴리 러쉬'
각설하고,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이 드라마는 제가 정말로 좋아했던 드라마였습니다. 여형사가 정말 매력있는 인물이거든요. 느와르 장르에서 '무겁고, 어두운 남성 캐릭터'는 아주 흔한 것이었습니다만, 범죄드라마든 수사드라마에서 여형사가 어둡고 고독한 경우는 사실 그렇게 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스러워 보이기만 하는 이 금발의 여인은 어딘지 모르게 무겁고, 슬픈 인상이었고 그러면서도 리더십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믿음직스러운 형사였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챙겨보는 가장 큰 이유였죠.
아마도 두 번째 이유는 대니 피노(Danny Pino)였을 것 같네요. 2시즌으로 넘어 오면서, 릴리와 갈등하게 된 스카티의 무르익은 연기가 몰입감을 더했습니다.
릴리의 비밀스러운 '배경'에 대해선 언제나 기대했지만, 좀처럼 알 수가 없었고 다만 짐작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하다든가, 몸이 불편한 고양이 둘과 지낸다든가 하는 문제들을 통해서요. 2시즌은 그런 궁금증을 단박에 풀어줍니다.(그녀의 어머니는 알콜중독자였고, 아버지는 6살 때 집을 나갔습니다. 방임과 무관심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내던 그녀는 어머니의 술을 사러 나갔다가 폭행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사정인지라,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어요. 참 잘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죠. 선물 상자의 포장끈을 풀어낼 때의 '기대감'과 상자가 열렸을 때의 감격 같은 것이 2시즌 끝무렵에 든 저의 감정이었습니다.
릴리는 연쇄살인범인 조지 마크스를 죽입니다. 그녀가 죽인 건 일개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과거일지 모르겠습니다. (조지는 '나의 과거로 온 것을 환영한다'라고 말합니다. '숲'은 일종의 기억의 은유라고 생각했어요. 뭐 흔한 방식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그녀는 조지의 말처럼, 사실은 그를 죽이고 싶었을 거예요. 잠시 갈등했던 것은 '경찰'로서의 의무를 지켜야 했기 때문일 뿐이죠. 그러나 기회가 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향해, 또 다른 자신(혹은 자신의 다른 부분,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찬 정신의 덩어리)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그녀는 정말, 그녀의 과거를 죽였을까요?
어쩌면 릴리는 '경찰'이라는 갑옷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경찰이 되지 못했다면 그녀 또한 또 다른 '조지'가 되어 세상에 복수를 하며 살아갔을지 모릅니다. 그녀의 어두운 과거는, 그녀가 간신히 빠져나온 삶의 경로를 예측하게 합니다.
수사물 속에서의 경찰과 범인은 자주 서로 닮은 인간으로서 대치되곤 하죠. 어느 쪽이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 해요. 경찰은 범인에게, 범인은 무고한 사람에게 총신을 겨눠요. 하지만 사실 그들은 같은 쪽을 보고 있는지도 몰라요.(자기 자신의 한 부분이라는..)
문득, CSI LV에서 닉을 향해 총을 겨눴던 스토커가 생각나네요. 물론 이 드라마에서와는 많이 다르지만요.
그 둘이 공존할 수 없다는 점에선 닮은 것 같아요.
경찰과 살인범은 어느 한 쪽에만 있을 수 있어요.
우리 내부에서 싸우고 있는 선과 악의 두 자아처럼 말이죠.
그녀가 죽인 건, 그녀 자신의 과거가 아니라,
과거와 비밀을 알고 있는 한 인간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녀의 비밀을 아무도 알 수 없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를 영원히 잠가버리는 것!
그녀가 원했던 건, 그것이었을지도요.
앞부분 두 문단은 2022년에 썼고, 그 뒤부터는 10여 년 전에 적었던 것을 약간만 수정해서 옮겼습니다.
너무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해요. 릴리 러시라는 인물을 너무 좋아해서 '마인드 헌터'라는 영화를 찾아 봤던 기억도 있습니다. 다른 영화에서는 대단히 여성스러운 매력을 뿜어내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상당히 보이시하고 어둡습니다. 그게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인지, 그 뒤로 그녀의 다른 연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궁금하게 하는 인물'을 만드는 건 쉽지가 않은 것 같은데, 릴리 러시가 그런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이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이 드라마에 깔리는 음악들은 환상적으로 아름다웠거든요.
이 글은 여기에서 줄일게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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