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수사반장 1958」이 종영됐습니다.
「수사반장 1958」은 이제훈 주연의 형사드라마로 지난 1971년부터 1989년까지 MBC에서 방영된 '금요 드라마 수사반장'의 리메이크 버전입니다.
80년대 이전에 태어나신 분이라면 어릴 때 한 번쯤은 수사반장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으실 텐데요. 저 또한 최불암, 김상순('대추나무 사랑걸렸네'로 유명하셨죠.), 조경환(호랑이 선생님), 남성훈(사랑과 야망)님이 등장하던 수사반장을 몇 번 본 일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수사드라마의 '고전'이자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수사반장'이 리메이크된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봤습니다만은, 솔직히 '형사물', '수사물' 매니아인 저의 관점에서는 다소 아쉬운 드라마였습니다.
수사극은 기본적으로 '에피소드 드라마'이기 때문에 큰 줄거리가 없습니다. 요즘 수사극은 큰 플롯을 두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만들어주는 식으로 만들어지기는 합니다만은 원래 형사드라마, 탐정물이 그렇게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기 때문에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끈기 있게 보기 어렵기도 하죠. 저는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라서 이런 장르를 좋아하고,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시트콤'이 많았는데, 시트콤이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구성된 드라마 형식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좀 큰 플롯이 있기를 기대했는데요. 이 드라마의 배경이 1958년이기 때문입니다. 최불암이 연기했던 주인공 '박영한'이 '반장'이 되기 전의 활약상을 그리기 위해서 그 시기를 설정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1958년대의 상황이 좀 더 리얼하게 담기기를 바랐는데, 살짝 맛만 보여주고 끝나서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 1958년은 이승만 집권기죠. 특히나 1960년에는 3.15 부정 선거로 인한 4.19 의거가 일어난 해이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좀 드라마에 담기기를 바랐거든요. 특히 첫 방송일이 4월 19일이었잖아요. 그런데 그냥 정치 깡패 이정재가 이승만 빽을 등에 업고 상인들에게 돈을 뜯는 등 폭력을 일삼다 결국은 교수형을 당한다는 이야기만 나오는 게, 한 개인의 일탈처럼만 읽혀서 좀 그랬습니다.
사실 이승만 정권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부패경찰'이었고, 또 경찰을 이용해서 민중을 많이 억압했는데 그런 부분들도 잘 드러나진 않습니다. 시대는 따로 놀고, 주인공은 그냥 수사를 잘할 뿐인 '한 방'이 없는 드라마라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참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 영국드라마 'Life on Mars'라고 있습니다. tvN에서 리메이크되었죠. 우리나라 리메이크도 시대적 의미를 별로 해석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게 2000년대 형사가 70년대로 돌아간다는 설정이거든요. 2000년대에는 '인권 의식' 때문에 피의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지만, 70년대에는 그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2000년대의 형사에게 70년대의 폭력은 '몰지각'할 뿐이죠. 주인공은 그렇게 수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패하고 어리석고 폭력적인 70년대 형사들과 갈등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화성에서의 삶(?)'인 거죠. 완전 새로운 세계에 떨어진 형사가 자신이 살던 시대의 기준에 맞춰 연쇄살인범을 잡으려 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 그게 라이프 온 마스입니다. (이 사람이 결국 시대에 동화되었던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1950년대는 '나쁜 놈에게 폭력은 괜찮아'라고 하면서, 현재의 '인권 의식'을 묵살해 버리는 용도로만 사용됩니다. 2020년대 배경 드라마에서는 피의자를 폭행하는 형사는 징계감이지만, 1950년대 형사에겐 그런 인권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고문을 해도 되고 협박을 해도 됩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시청자는 '그래, 저렇게 나쁜 놈은 맞아도 싸!'라고 하면서 폭력을 용인해 버리죠.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는 동료 경찰을 고문합니다. 정보를 캐내기 위해 똥통에 빠뜨려 똥독에 오르게 하죠. 물론, 그 경찰은 부패경찰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옳은 일입니까?
배경이 1958년이라고 해도, 이 드라마는 2024년에 방영되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렇게나 정보를 캐내도 되고, 배고파서 저지른 범죄는 쉽게 용서해주는(거지들이 떼로 달려들어 상인들의 물건을 마구잡이로 훔치고 먹어 치우는 걸 그렇게 쉽게 용서해도 되는 건가? 상인들의 입장에서 그건 엄청난 공포이지 않을까?) 쉬운 관용이 진정한 '정의'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착해 보이기만 하는 형사'를 만드는 데만 급급하게 사용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1958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를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요.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이 있었던 해도 1964년으로 이 드라마의 배경과 일치합니다. 이 사건은 국가에 의해 범죄가 조작되어 결국 체포된 사람 일부는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1974년에는 사태가 더 심각해져서 아무나 붙잡아 고문하여 마음대로 기소하고 사형 확정 18시간만에 기습적으로 사형이 집행되기도 했었죠.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는 드라마에서 범죄자와 별반 다를 것 없이 행동하는 형사를 영웅으로 그려내는 것은 과연, 시대적으로 맞는 것일지 의문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리뷰를 하지 않은 캐나다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요. '머독 미스터리'라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가 1800년대 후반의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형사물이고 과학적인 수사를 하는 '머독'이 여성운동가 '법의학자'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줄기 중 하나가 '여성운동'이예요.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후, 여성들에게도 바로 '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만은 투표를 하여 정치인을 뽑을 수 있었던 시기에도 유럽의 많은 여성들은 투표를 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부터인가 여성 참정권 운동이 진행되었죠. 머독 미스터리에서도 오그덴 박사가 참정권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정선거, 선거방해 등등 여러 가지 공작이 이루어지죠. '머독 미스터리'는 코미디 요소가 많은 드라마이지만, 역사를 진지하게 다룹니다. 드라마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가 '천주교'여서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죠. 상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한국의 역사를 다룬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역사는 때로 아주 예민한 문제이고,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중하고 또 확실하게 다뤄야 합니다. 또한 어떤 '찐한' 역사적 배경 속의 인물이 캐릭터로 완성도를 갖기 위해서는 그 배경과도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1958이라는 숫자를 붙인 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역사는 그저 도구로만 사용된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각 인물의 '드라마'가 좀 약하다는 생각이었는데요. 에피소드에서 인물의 '색깔'과 '서사'가 같이 표현되어야 하는데, 작가님이 아직까지 그 정도 역량은 안 되는(2020년 MBC 드라마 작가 데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대사도 '문어체'에 가깝다는 느낌이어서 가끔 어색할 때가 있더라고요.
정해진 인물이 모두 나와야 하고,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이야기에서 표현되어야 하고, 역사도 담아야 하니 얼마나 어려운 작업 과정이었을까. 이런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원작은 굉장히 오랫동안 방영된 드라마였고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함께 담긴 드라마였으니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 더 정성스럽게 기획되었어야 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드라마가 조금 더 보완되어서 다시, 새로운 시즌으로 방송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모범택시' 유사품처럼이 아니라, '고전 수사극'을 보는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서사, 인간애, 시대적 배경 등이 리얼하게 표현된 드라마로 말이죠.
[한국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tvN, 2024) - 통쾌하고 유쾌한 '사내' 복수극 (0) | 2024.01.05 |
---|---|
[한국드라마] 경성 크리처(2023, 넷플릭스, 공포물) - 비주얼 미학 (1) | 2023.12.28 |
[한국드라마/OCN] 스틸러 : 일곱 개의 조선통보 - 문화재 도둑에게서 보물 훔쳐내기 (1) | 2023.04.13 |
[한국드라마/정치물] 트롤리(2022~2023) - 두 개의 올바름에 관해 묻다 (0) | 2023.04.13 |
[한국드라마] 링크 :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 2022 - '공감'이라는 판타지(feat. Black Mirror 2x2) (0) | 2023.03.2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