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만영화] 하나 그리고 둘 : 우리의 뒷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감독, 에드워드 양

영화 리뷰/아시아 영화

by 사라뽀 2023. 3. 28. 19:39

본문

반응형

대만영화이지만 일본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하나 그리고 둘'이란 영화와 영화감독 에드워드 양(양덕창)에 대한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 영화감독을 처음 본 것은, 허우 샤오시엔의 "동동의 여름방학(冬冬的假期, 1984)"에서였습니다. 이 영화는 동동이란 아이가 여름방학을 맞아, 할머니댁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게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영화였습니다. 미끄러운 마루바닥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듯이 노는 아이들의 놀이가 저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였는데요, 대만이나 우리나라나 문화 차이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의아하고 신기했습니다.

 

에드워드 양(양덕창)은 이 영화에서 동동의 아버지로 출연했던 것 같아요. (항상 정확하겐 기억이 나질 않네요.)

[하나 그리고 둘] 포스터

하나 그리고 둘
에드워드 양(양덕창) 감독 | 2000 | 대만/일본 | 173分
출연: 오념진(우닌지엔), 금연령(Yanling Jin), 오가타 잇세이

사실은 이 영화 '하나 그리고 둘'도 큰 기대 없이 봤습니다. 에드워드 양에 대해선 조금 유명한 감독이란 것 정도만 알고 있었고, 저에게 유명세란 별로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러닝타임도 3시간에 육박하는, 긴 호흡을 요구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과연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마저 엄습해 있었죠. 하지만 영화를 본 이후 제가 느낀 감정은 "당했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1년을 완성하는 네 개의 계절처럼, 이 영화는 삶의 모든 계절과 풍경을 한 폭에 담고 있었습니다. 이 한 폭의 풍경화에서, 감독은 삶에 대한 진한 통찰을 보여줍니다.

 

[하나 그리고 둘] 스틸컷

 

속도위반결혼을 하는 남자와 그의 결혼식에 찾아온 옛 애인의 등장으로 당황해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영화에는 삶과 죽음, 사랑, 이별, 증오, 결혼, 잉태 등 우리네 삶을 구성하는 온갖 풍경들이 담겨 있습니다. 감독은 이런 풍경들을 통해서 우리가 보지 못하게 되는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에드워드 양은 이 영화를 만들고 7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소식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었는데요,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보니, 이 영화는 마치, 유서 같기도 합니다.

[하나 그리고 둘] 스틸컷

 

 

이 영화에는 '양양'이란 꼬마애가 등장합니다. 작고 왜소한 양양은 사람들의 뒷통수만 찍고 다닌다는 이유로 동급생들과 선생의 비웃음을 삽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보는, 수영장 속이 궁금해 목숨 걸고 물 속에 들어가는 이 아이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뒷모습을(볼 수 없었던 진실을) 보여주려고 했던 에드워드 양 자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양양처럼 그는 세상이 관심을 주지 않는 '구석'들과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어 보여주며 우리가 보지 못했던 세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을 '보여'주려 하였던 것이죠. 비록, 비평가들의 비웃음을 사더라도 말입니다.

 

에드워드 양은 중국에서 태어났고, 대만에서 자랐으며, 미국에서 공부했고, 다시 대만으로 돌아와 대만뉴웨이브를 이끌었습니다만, 대만 평단의 외면을 받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말년에는 친구였던 허우 샤오시엔과도 소원해졌다고 하는데요, 동양인들에겐 아무래도 더욱, 낯선, 미국이란 땅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메타영화'적이라고 느꼈는데요,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죠.) 영화란 정말 삶의 모방인 것인지, 영화는 과연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얘기에 대한 글은, 제가 오래전에 써두었던 (조금 산만한) 글로 대체하겠습니다. 박스 안의 내용은 스포일러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영화적' 장면은 단연, 도쿄에서 첫사랑과 데이트하는 아버지(NJ)와 딸 팅팅의 데이트 모습이 교차 편집되면서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오버 사운드'가 사용되었다는 거였다. 교묘하게 교차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버지는 정말로 과거로 회귀한 것 같았다. 그래서 과거이지만 현재인 것 같고, 후세대의 삶은 과거의 모방인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그 두 남자(NJ와 딸의 데이트 상대-뚱보)는 달랐다. 뚱보는 '위선'으로 가득 찬 영어 선생을 살해함으로써 그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다. 아버지는 여전히 세월에 휩쓸려 갈 뿐이고, 회사의 결정에 따라, '모방을 잘 하는 값싼 회사'와 계약하게 된 탓에, 진품을 만드는 '오오타'와의 관계를 끊어야만 한다. 그들은 '의외로'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지만, 현실은 냉정해서 어쩌면 그들은 영영 만나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 그들의 관계를 맺어주고 끊어놓는 현실은 바로 '자본주의적 현실'이며, 어쩌면 영화적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값 싸고 안전한 모방의 현실을 택할 것인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새로운', '처음의 것'을 택할 것인가.

감독은 바로 자신에게 묻고 있다.
'나 또한 늙고 있지만, 여전히 고민중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어린 양양은, 부부싸움 후 썬글래스를 끼고 나온 옆집 아줌마를 더 자세히 보려다가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자, 이렇게 말합니다.

 

 

"슬픔은 뒤에선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더 자세히 보려고 한 것 뿐이에요."

[하나 그리고 둘] 포스터

그러자 아버지는 이해하겠다는 듯, 

"그러면 카메라를 줄 테니, 네가 알고 싶은 것들을 찍어라."

라고 말합니다.

양양은 세상의 온갖 구석들과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습니다.

마치, 모두의 슬픔을 알고 싶다는 듯이.

 

이것이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적 지향점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영화에서 양양의 마지막 대사는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지게 합니다.

 

"할머니와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제가 하는 말은 죄다 할머닌 아시니까 안 했어요.
늘 그러셨죠. '말을 잘 들어라.'
할머닌 가셨는데 하지만 어디로 가셨죠?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곳일 거예요.
할머니, 전 모르는 게 많아요.
커서 뭘 하고 싶은 줄 아세요?
남이 모르는 일을 알려주고 못 보는 걸 보여 주고 싶어요.
그럼 날마다 재밌을 거예요.
할머니가 계신 곳도 찾겠죠.
그러면 모두에게 말해서, 함께 할머니께 가도 되나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특히 이름이 없는 아기를 보면,
할머니가 늘 늙어간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저도 늙어 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양양의 마지막 대사-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갓난 아기보다 어린 꼬마 양양이 조금 더 늙은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요? 세상은 다 그런 거라고, 인정하면서 늙어가야 할까요? 


ps.
줄거리를 요약해 보려고, 다시 본 영화였는데요, 줄거리란 게 필요 없어 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그냥, 봐야 압니다. 삶이란 건, 한 줄로 요약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요. 많은 것들이 생각나서, 점점 산만해지는 글.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서 올려 봅니다.

 

ps.

오랜만에 필름2.0을 뒤적여 봤습니다. 그간 폐간된 영화주간지가 꽤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했던 필름2.0도 그렇고, 프리미어도 폐간되었죠. 드라마티크라는 드라마 잡지도 나왔지만, 오래 가지 못했어요. 내용은 실했는데 말이죠. 필름2.0 사이트에서 지난 기사들을 볼 수 있었는데, 필름2.0으로 검색해도 사이트 주소가 안 나오네요. 여러모로 안타깝습니다. 혹시 검색해서 찾으실 수 있다면, 에드워드 양에 관한 필름2.0의 기사도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이게 무슨 무책임한. ^^;;)



이 글도 10년 전 글입니다.

이사할 때 필름2.0 1년치를 다 버렸는데,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ㅠㅜ 10년 전인데...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