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우리는 생각합니다. 잔인한 범죄사건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을 '상상'하며 가해자의 행동을 비난하고, 적절한 형벌이 내려지기를 기도합니다. 공감이라는 상상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꿈이기도 하죠. 이해받고 공존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꿈이요.
드라마 '링크'는 '공감'이라는 현상을 '판타지적'으로 다루며, 애틋한 로맨스를 만들어냅니다. 여백을 갖춘 대사들은, 낭만성을 더하죠. 근래 들어 부쩍, '소설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음', '감정'을 다룬 이야기답다는 생각입니다.
편성채널 tvN
방영시간 2022.6.6~ (월화드라마)
연출 홍종찬
PD 전지수
극본 권기영, 권도환
시청연령 15이상
- 18년 만에 다시 시작된 링크, 한 남자가 낯선 여자의 온갖 감정을 느끼며 벌어지는 감정공유 판타지 로맨스
저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시점에- '블랙미러'라는 드라마가 생각났습니다. 영국의 SF (옴니버스) 단막 시리즈물입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저에게 큰 자극을 주었지만, 무엇보다 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에피소드는 시즌2의 2화 '화이트베어'였습니다.(Black Mirror 2x2 에피소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블랙미러_시즌2_2화_화이트베어(WhiteBear) 줄거리
낯선 집에서 한 여자가 깨어납니다. 발밑엔 약통이 엎어져 있고, 컴퓨터 모니터엔 이상한 표식이 떠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여자는, 탁자 위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여다 보지만 자신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는 여자. 마을 사람들은 창문 너머에서 그녀를 구경하고, 어떤 이는 그녀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도 합니다. 여자가 묻습니다.
"내가 누구죠?"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여자를 촬영할 뿐입니다.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이는 여자. 공포는 현실이 됩니다. 모니터 속 '이상한 표식'의 스키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 사냥용 총을 들어 여자를 겨눕니다. 여자가 도망치자, 총을 겨눈 채 여자를 뒤따라오는 남자. 사람이 죽을 위기에 빠졌는데도, 마을 사람들 누구 하나 그녀를 돕지 않습니다. 그저 그녀를 촬여할 뿐입니다.
편의점에서 다행히 조력자를 만나는 여자. 그러나 조력자는 '화이트베어 송신기'를 찾아야 한다며, 여자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유인하고, 그곳에서 격투 끝에 상대의 총을 빼앗은 여자는 상대에게 총을 발사하지만, 총구에선 색종이만 터져 나올 뿐입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여자. 잠시 뒤, 더 어이없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세트장이 열리며, 수백명의 관객이 환호를 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공격했던 남자가 '사회자'로 등장해, 여자를 소개합니다. 자신을 도와줬던 여자도, 자기 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죠. 여자는 무대 위 의자에 앉혀지고, 그녀가 '누군지' 까발려집니다.
그녀는, 살인자입니다.
6세 여아를 유괴/살해하고 이를 촬영한 잔혹한 범죄자죠.
그녀의 공범은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사형은 사칩니다. 6세 여아를 살해하고, 이를 촬영한 그녀의 죄는 고작 '사형' 정도의 형벌로는 어림도 없는, 무거운 죄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를 동물원의 짐승처럼 가둬놓고, 그녀가 6세 여아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고통주기로 '사회'가 결정한 것이죠.
그녀는 황당했던 하루의 '이유'를 알게 되지만, 그 고통스러운 깨달음은 또 다시 지워집니다. 그리고 내일, 그 고통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관람객'들은 기꺼이, 그녀를 고통주기 위해 방문합니다.
'고통'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고 하는 인문학적 성찰을 보여준다는 느낌도 있고, 또 남에게 고통을 주면서 그것을 '오락'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미친듯한' 환호성이 보여주는 현대사회의 '잔인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굉장히 흥미로운 드라마입니다.(2022년 7월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리지널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사라질진 모릅니다. 제가 영드 하나[the fall] 나중에 보자고 미뤘는데, 사라졌더라고요. ㅜㅜ)(하지만.. 양심 없는 범죄자에게는 이런 '공 들인' 형벌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비극이죠.)
아무튼, 이런 상상 누구나 해보았을 겁니다. 잔인한 범죄를 저질러도 고작 몇 년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게 전부라는 것이, 가끔은 말도 못하게 불공평해 보이기도 하죠. 똑같은 수준으로 벌 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우리가 보호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갚을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공감'했기 때문에, '분노'가 생기고, '미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사회'를 하나로 모으죠. 그러니까 공감은 '사회'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여주인공 주변의 이상한 남자들 - 이야기의 시작
이 드라마는 '같은 감정'을 느끼는 남녀의 이야기이자, 18년 전에 일어난 '범죄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8년 전, 여동생을 유괴 사건으로 잃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양식당의 수석 셰프입니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심장 통증을 느끼다 쓰러지는가 하면, 홈쇼핑에서 고기를 팔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맥락에 안 맞게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는 등 이상한 감정 기복을 느낍니다. 남자는 왜 자신이 갑자기 이상한 감정 기복을 느끼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타인의 감정을 대신 느끼는 '링크' 현상을 겪고 있거든요. 쌍둥이 여동생과의 교감으로 진작부터 알고 있던 감정 링크 현상이었습니다.
다시 시작된 '링크', 남자는 자신과 감정이 링크되어 있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때, 남자의 눈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그녀는 엄마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대학 나온' 딸입니다. 현재, 지인이 대표로 있는 음식점에서 서빙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공과금을 낼 돈이 없어, 연체독촉장이 현관문에 벽지처럼 붙어 있는 참담한 상황에, 엄마가 반찬을 가지고 방문한다는 전화를 받자 마자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미친듯이 집으로 뛰어 들어오죠. 엄마에겐 '잘 사는 딸'로 비치고 싶어서.
남녀는 어느 요리박람회에서 만나게 됩니다.
남자, 그러니까 은계훈은 여자, 노다현에게 "살고 있는 곳이 어딘지?" 묻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같아서죠. 다현은 어이없어 하며 자리를 떠납니다. 행사장으로 돌아온 다현, 그리고 그녀 앞에 다가온 또 한 명의 낯선 남자 진근.
다현의 소지품 위에 놓인, 은계훈이 남긴 것_다현이 맛있어 했던 음식입니다. 그리고 스카프.(어? 뭔 전개?)
그리고 이 둘은 또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다현은 계훈을 스토커로 오해해, 계훈이 남겼다는 '스카프'와 음식을 불쾌해 하며 돌려주고, 계훈은 자신이 준 적 없는 '스카프'를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리고 이 둘의 이야기는 시작되죠.
다시 돌아온 그 마을, 지화동
계훈은 자신이 다시 링크를 겪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18년 전 끔찍한 사건의 있었던 옛 동네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양식당을 차리기로 하죠. 동네는 몹시 더럽고, 저개발인 상태인데다 노상방뇨를 하는 이상한 아저씨가 길을 배회하기도 합니다. 양식당을 차리기에 전혀, 적절하지 않은 동네입니다. 하지만 계훈의 관심은 양식당에 있지 않습니다. 여기 여전히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낡은 길에 남겨진 동생과의 진한 추억, 그리고 무언가 돌이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그를 이 마을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동생을 외롭게 했던 죄책감, 혼자 있게 해서 동생을 잃어버리게 된 거라는 자책감. 계훈은 사건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도대체 동생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8년 전 끊겼던, 동생 계영의 감정. 그런데 18년만에 감정 링크가 시작된 겁니다. 계훈은 혼란스러워 하지만, 계영의 감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계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죠.
월세 낼 돈이 없이 보증금이나 까이며, 온갖 공과금을 연체시키며 자취생활을 이어가던 다현은, '이진근'의 존재를 알게 된 뒤 직장을 그만두고 월셋방을 빼, 본가로 돌아옵니다. 스토커 '이진근'도 다현을 좇아, 마을을 배회하고 다현을 괴롭히죠.
이야기의 전개-어쩌면 스포일러
이진근이 다현을 지속적으로 스토킹하고, 스토킹하고 괴롭힌 또 다른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녀의 가족이 마을에 등장하면서 '다현'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합니다. 냉장고에서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택시 기사가 늘 다니던 길에서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일으켜 춘옥전골(다현네 노모와 엄마가 하는 가게)을 반파시키기도 합니다. 다현을 지키려는 모친 복희(김지영)와 춘옥(예수정)의 노력은 우스꽝스러워보이기도 하고, 간절해보이기도 합니다. 둘은 딸을 죽이려 한 이진근을 공격해 죽이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또 불안해합니다. 자수를 결심하고 몇 번이나 지화동 지구대에 방문하기도 하죠.
딸을 보호하려는 복희 모성애의 '깊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현에게도 18년 전,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은 계영의 유괴와도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다현에게 일어난 '스토킹 사건'은 종국에는 18년 전 사건으로 들어서는 '문'이 됩니다.
복희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날-계영이 사라져 버린 날 있었던 사소하지만 결정적이었던 에피소드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유괴실종 사건'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립니다. 다소 진부하지만, 은밀하게 사악한 한 남성이 여전히 그 마을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그가 잃었던 기억을 되찾은 다현을 없애려 접근해 오는 것으로 '스릴러적 전개'가 진행됩니다.
아마도 로맨스 스릴러(스포 주의!)
혹은 로맨틱 서스펜스Romantic Suspense라고도 불리는, 이야기 장르로, '로맨스' 상황의 남녀가 '위협적 상황'에 처하는 이야기로 기획된 것으로 보입니다. 로맨틱 서스펜스(로맨스 스릴러)는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 플롯으로, 서스펜스적인 상황으로 인해 '로맨스'에 빠지는 스토리입니다.
로맨스 스릴러의 공식에는 딱 맞지만, 너무 많은 요소들을 포함시켜 여러모로 '산만한 구성'으로 전개된 드라마로 보입니다.
두 인물의 '운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어렸을 때 같은 마을에 살았고, 또한 그때 감정적으로 통한 적도 있다'는 설정, 남자의 가족 실종과 여성의 연관성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여성을 스토킹하는 범죄자가 18년 전 사건과도 연관이 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이야기를 '필연적인 서사'로 뭉쳐, 리얼리티를 반감시킨 느낌이었습니다.
딸, 손녀를 지키려는 복희와 춘옥의 열렬한 방어와 공격은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고, 온전히 리얼하여 김지영씨의 연기력이 여지껏 제대로 발휘된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자아낼 지경이었지만, 다현-스토커-계훈-다현의 가족 간의 혈극이 지나가고, 또 다른 범죄자-살인자가 등장하면서는 공감해야 할 대상, 동정해야 할 대상이 실종되어버리면서 이야기의 중심이 흐트러진다는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물론 계훈은 처음부터 '계영'을 찾고 있었고, 시청인으로서 저 또한 '계영'이 살아 있어서 온전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왔음에도,.. 어쩐지 맥이 풀렸달까요?
다현에게로 집중되었던 감정이 계영에게로 온전히 이어지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복희의 정당방위 살인이 법적 판결(무죄)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큰 죄악'으로 비춰지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여기엔 당시 죽을 뻔 했다 살아난 '경찰'의 직무유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솔직히 이 경찰의 행동이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마 복희의 죄책감이 과해보일 수 있을 것 같아 설정된 장치였을 겁니다. 전체적 틀에서 보면 경찰의 명백한 잘못이며, 범죄이지만 적어도 복희가 계훈에게 그토록 비난받아야 할 정도로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드라마의 스토리텔러는 '과학자'처럼 '범죄'를 규정해, '모두 죄책감을 가져라' 강요하고 있는 인상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던 인간이, 어린 아이의 '구조 요청'을 무시했다는 것은 큰 틀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비난할 수 있는 사건'이겠지만 짧은 현상 속 '개인'에게 '충격적 결말'의 모든 책임을 지우는 일은 지나치게 가혹합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서 '죄책감'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습니다.
'사회가 한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연대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어쩌면, 이 드라마 스토리텔러가 들려주고 싶었던 궁극적 '주제의식'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러의 기획 의도는 반쯤 성공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주제의식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이와 같은 태도는 이제껏 여러 드라마가 미처 보여주지 못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필요했던 관점이기도 했죠. 사건의 가해자에게 대중의 무차별적인 증오를 쏟고, 그를 제거하면 악의 씨앗이 제거된다고 믿는 이상한 환상은 범죄사건 감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범죄를 예방하는 건,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 '우리들의 세상에 대한 관심' '인간에 대한 사랑' 같은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건강한 감정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의도는 필요하다 못해 소중하기까지 하죠.
그럼에도불구하고 절제되지 않은 감정들의 전시장인 이 드라마의 결말부는, 수많은 물음표를 남깁니다.
시청자는 주인공인 '다현'의 감정과 '계훈'의 감정에 집중합니다. 그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죠. 주인공은 '주된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계영의 감정'은 사실, 실재하지 않습니다. '정보'로 존재하지만 '감정'을 출력시킬 수는 없는 것이죠.
우리는 무관심했던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분노할 수 있지만, 계영을 그리워하기에는 '추억', '기억', '에피소드'가 부족합니다. 그런 이유로, 다현의 스토커가 제거된 뒤로는, 열렬한 기대를 할 수가 없게 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스토커가 다현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장면을 보고 불편했습니다. 사실 요즘 드라마의 분위기는 '폭력적 장면'을 직접적으로 전시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대개는 사건 장면을 상당히 축약하거나 스냅사진처럼 짧게 보여주죠.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너무 노골적으로 교살 장면을 보여줍니다. 아마, 피해자의 감정을 느껴보라는 의도였겠죠. 하지만 이 장면은 실제 존재하는 피해자에게 '고통'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힘의 우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이 장면을 보고 극심한 괴로움을 느낄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이를 보고, '힘'을 왜곡되게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희열을 느끼고, 이를 모방하려는 사람도 존재할 것입니다. 장면이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반응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을 콘텐츠제공자가 일일이 통제할 수도 없는 일이죠. 하지만 '폭력적 장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무감해'집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들의 인간성을 좋게 학습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장면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죠. 무감해지지 않게 하려고.
인간의 무감함을 비판하면서, 실제론 무감하게 '폭력적 장면'을 드러내는 태도의 '모순'은 실로 아쉬운 지점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저는 이 드라마가 좋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대사 안에 '공백'이 있어 생각을 깃들일 수 있는 '템포'가 존재하는 게 좋습니다. 인물이 인물을 보는 시선이 좋고, 스토리텔러의 진지한 고민이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공감'이라는 주제의식이 좋습니다.
'고통은 본질적으로 고독'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사랑'을 통해 누군가로부터 지속적인 '공감'을 받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건 '판타지'죠. 비현실적인 조건이 존재할 때에만 가능한,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판타지란 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드라마는 상상을 자극합니다.
상상을 명령합니다.
'공감하라'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다면.
시청률이 낮다고 들었습니다.
플롯때문일까?
사실 저도, 일주일 전쯤부터 보기 시작했어요. 기대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볼 만한 드라마라고 생각했지만 첫 화를 다시 보니 시작부터 조금 삐그덕거렸던 것 같네요. 이해할 수 없는 설정들이 있지만, 볼 만한 드라마입니다.
[인물소개-스포일러 있습니다]
은계훈(여진구) : 셰프(요리사), 어릴 때, 여동생을 잃어버렸다. 식음을 전폐한 어머니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다는 생각에 쉐프가 되었다. 여동생이 사라진 뒤, 아버지도 집을 나갔다. 계훈은, 오랜 시간이 지나 여동생을 잃은 그 동네에 다시 찾아와 식당을 연다. 그리고 노다현을 만난다.
노다현(문가영) :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백수'다. 자취를 하며 열심히 취업활동을 하고 알바도 했지만, 얻은 건 '스토커'만뿐. 스토커 피해자로, 몇 번의 위기를 넘긴다. 엄마,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손을 돕는다. 은계훈을 알게 되면서, 잃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는다.
나춘옥(예수정) : 다현의 노모. 딸과 손녀를 위해서라면, 누굴 죽일 수도 교도소에 대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착한 할머니다.
홍복희(김지영) : 다현의 엄마.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음식솜씨가 없는데도, 식당을 한다. 딸을 스토킹하는 남자를 죽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죽이지 못했다. 10여 년 전, 마을에서 있었던 유괴사건과 관련된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
지원탁(송덕호) : 지화지구대 순경. 계훈의 여동생 계영이 유괴, 실종된 사건의 가해 용의자로 지원탁의 아버지가 지목된 뒤로 지옥같은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피아노 학원을 접었고, 지원탁은 이름을 바꾼 뒤 경찰이 되었다.
황민조(이봄소리) : 지화지구대 경사. 경찰이 되기 전(?) 지원탁과 연애를 했었다.
차진후(이석형) : 은계훈이 개업한 양식집의 셰프, 혹은 동업자다. 은계훈, 노다현의 조력자로 소소하게 기능한다.
이은정(이봄) :(아레레? 봄이 둘이네) 스토커 이진근에 의해 동생을 잃었다. 노다현이 이진근과 공범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노다현에게 접근했다가 그녀도 피해자란 것을 알게 된다. 계훈의 양식당 셰프다.
서영환(유성주) : 지화지구대 대장. 다소 무능력한 경찰이다.
안정호(김찬형) : 지화지구대 경위. 복희를 사모하여, 그녀의 식당에 매일 간다. 알고 보니, 10여 년 전 유괴사건 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
조동남(윤상화): 건설노동자, 노다현과 은계영이 잡혀 있던 집에 살고 있다. 사건이 벌어졌던 날, 계영의 도와달라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아 죄책감에 시달린다.
김민철(유정호) : 택시기사. 도망치던 스토커 이진근을 택시로 친 뒤 산에 묻으려다 이진근이 깨어나는 바람에(?) 이진근의 협박 대상이 된다. 이진근은 김민철에게 은계훈을 죽이라고 사주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을 바꾼다.
장미숙(박보경) : 계훈의 어머니. 딸을 잃은 뒤 폐인처럼 살고 있다.
은철호(권혁) : 지화동 유일의 병원 은내과 원장이었다. 계훈의 아버지, 딸을 찾으러 병원도 접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중.
은계영(안세빈) : 계훈의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다현과 함께 유괴된 뒤, 실종되었다.
장미선(우미화) : 장미숙의 언니, 계훈의 이모. 미숙의 집 근처에 살며 그녀를 돌본다.
한의찬(이규회) : 지원탁의 친부. 용의자로 몰린 뒤, 학원도 망하고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홀로 살며 폐지를 줍고 있다.
이영훈(서동갑) : 생선가게 사장. 경찰들과 친분이 깊다.
잘 쓰고 싶었는데, 이틀에 걸쳐 써도 산만하네요. 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S.
드라마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아, 밑에 씁니다.
이 드라마에서 '냉장고'가 계속(?) 돌아오는데, 그걸 보면서 '신진오'의 '상자'라는 단편 공포소설이 떠올랐습니다. 황금가지에서 펴낸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1'에 수록된 소설인데, 우연히 받게 된 '상자'를 갖다 버려도 계속 돌아온다는 이야기였어요. 수요괴담회에도 이런 종류의 에피소드가 종종 소개되죠. 일독을 권해 봅니다. 이 단편집 안에서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였거든요.
[한국드라마] 경성 크리처(2023, 넷플릭스, 공포물) - 비주얼 미학 (1) | 2023.12.28 |
---|---|
[한국드라마/OCN] 스틸러 : 일곱 개의 조선통보 - 문화재 도둑에게서 보물 훔쳐내기 (1) | 2023.04.13 |
[한국드라마/정치물] 트롤리(2022~2023) - 두 개의 올바름에 관해 묻다 (0) | 2023.04.13 |
[한국드라마] 나의 해방일지(2022) 13화 - 태어나지도 않은 형이 부러워요. (1) | 2023.03.29 |
[한국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 세상을 예쁘게 보기 위한 에너지 (1) | 2023.03.28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