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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드라마] 나의 해방일지(2022) 13화 - 태어나지도 않은 형이 부러워요.

사라뽀 2023. 3. 29.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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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13화 다시 읽기

창희는 야망이 없습니다. 돈도 여자도 명예도 갈망하지 않는다는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둡니다. 모든 갈등과 미움을 감당하면서까지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창희는 형이 있으면, 대충 살아도 될 것 같은데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형을 부러워할 만큼요.

나의 해방일지_포스터

 

아버지에겐 비밀로 하고, 출근하는 척 창희는 길을 나섭니다. 하지만 기정이 그걸 그냥 둘 리 없었죠. 싱크대 설치를 하러 나가는 아버지의 트럭 뒤에 대고 "창희 회사 그만뒀다!"고 폭로해버리고 맙니다. 창희는 혹여라 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쫓아오지나 않을지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가죠.

 

그날 저녁, 당분간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창희에게 아버지는 '당분간이 얼만큼이냐'고 추궁합니다. 창희는 서운한 마음에 속사포로 속 얘기를 털어 놓지요. 구씨에게는 그렇게 다정하면서 본인에게는 왜 그렇게 야박하게 구느냐고. 본인도 사회에서는 나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고. 사람 상대하며 일하는 게 힘들었다고. 그런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위로해주면 안 되는 거냐고. 

 

아버지는 그제야 창희가 자신에게 서운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아버지도 창희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습니다. 표현에 서툴 뿐이죠. 달리기에서 1등 하는 아들을 먼 발치에서 보며 미소를 짓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표현의 전부입니다.

 

야망이 없을 것 같던 아버지는, 고구마밭에서 자신의 농사를 비웃은 '서울사람'에게 감정이 상해 도로에서 추월 경쟁을 벌입니다. 지름길로 가서라도 반드시 이기겠다는 아버지의 과욕으로 인해 트럭은 논두렁에 쳐박힙니다. 애써 수확한 고구마는 모두 논두렁에 쏟아지고 말죠.

나의 해방일지 스틸컷(출처: JTBC 홈페이지)


그날 저녁, 엄마는 불평불만을 쏟아내면서도 저녁을 차립니다. 일 욕심 많은 남편을 만난 죄로 하루도 쉴 날 없이, 바쁘게 살아온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엄마에겐 무엇이 남은 것일까요? 자식들의 행복한 삶은 엄마의 '업적'일 수 있을까요?

 

엄마는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눈물에 담아 쏟아버립니다. 들썩이는 엄마의 어깨에, 그 뒷모습에 엄마의 회한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건실하지 못한 고구마가 열리던 그 밭, 엄마가 팔아 버리라고 했던 그 밭에선 어쩌면 '마음'이 열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주한 삶은 '마음'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듯이, 그때의 밭은 영 형편이 없었습니다.

 

건실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한 사람을 떠나 보낸 아버지.

이제 아버지의 삶은 어떻게 바뀐 걸까요.

나의 해방일지 스틸컷(출처: JTBC 홈페이지)

 

한 사람의, 아니 가족들의 빈 자리가 남은 집엔 밭에서 난 것들이 수북합니다. 아버지는 온갖 것에 신경 쓰느라 정작 '밭'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온갖 것에 신경을 쓸 기력조차 없습니다. 그에게 병이 찾아 온 탓입니다. 새로 들어온 부인이 아버지의 몫을 대신합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뒤늦게 '마음'이라는 열매를 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13화의 이야기를 꼼꼼히 써내려갔던 이유는, '태어나지도 않은 형이 부럽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심보선 시인의 '형'이라는 시가 생각났기 때문이죠.

 

보이지 않는 형을 만들고, 그를 호명하는 시인도

어쩌면 창희처럼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 해줄 형,

'내가 살며 버거워했던 것들'을 대신 해줄 형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의 몫까지 늙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시인처럼,

창희의 마음도 그렇게 한 살을 더 먹고 있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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