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영국드라마

[영국드라마] The Fall, 2013 - '여자' 형사 스텔라 깁슨의 시선

사라뽀 2023. 3. 2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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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The Fall)은 심리상담가인 연쇄살인범과 그를 좇는 형사(여자: 깁슨 경정) 이야기입니다.

(이 포스팅에는, 드라마 스토리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주인공인 깁슨 경정은 2010년 이후로 드라마에서 많이 보이기 시작한, 여성 캐릭터입니다. 어린 남자와 연정 없는 하룻밤을 보내는 연상의 성공한 여성으로 등장하죠.

The Fall 포스터

이 드라마는 심리스릴러물로, 영국드라마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미드 형사물의 빠른 전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는 구성입니다. 하지만 인물 하나하나에 쏟은 작가와 연출진의 애정이 느껴져서 개인적으로 꽤 재밌게 보던 드라마였습니다. 

 

솔직히, "연쇄살인범 vs 형사"라는 1:1 구도는 지나치게 반복되는 형사극/수사극의 구도이긴 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깁슨과 복합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폴 스펙터라는 캐릭터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하죠.

 

(Gillian Anderson이 Stella Gibson 스텔라 깁슨 경정을 연기하고, Jamie Dornan이 Paul Spector라는 심리상담가 역을 맡았습니다. 포스터에 나오는 두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매력은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있는 게 아니예요. 저는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피해자들을 보는 '시선'을 이 드라마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범죄'를 다룬 드라마들은 '피해자'였던 사람들에게 2차 가해를 가하죠. 때론 조롱당하고, 때론 무차별하게 파헤쳐지며, 대개 '대상화'된 채, 실험실의 더미처럼 함부로 다뤄집니다. 많은 드라마들이 표면적으로 '애도'하지만, 실제론 그저 도구화할 뿐이죠. 하지만 이 드라마에선, 피해자가 함부로 다뤄지지 못하게 합니다.

 

범죄자를 잡는다는 스릴 넘치는 스토리는, 오감을 자극하죠. 장르극을 찾는 사람들의 욕구를 해소시켜줍니다. 하지만, 다른 한 쪽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참하게 후벼파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드라마를 보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피해자'에 공감하며 드라마를 봅니다. 범죄드라마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성이고, 이 드라마를 보는 절반 이상의 시청자가 여성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불구하고 이야기들은 '가해자'의 관점에서, '사법집행자'의 관점에서 발화됩니다. 범죄자의 악마성을 강조해야 주인공인 형사의 '정의로움'이 부각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 드라마에선, 형사의 정의로움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써가 아니라 형사의 '관점'_피해자에 대한 인식_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써 형사 주인공, 깁슨 경정의 캐릭터를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깁슨의 대사는, 시청자에게 혹은 가상의 피해자에게 '어떤 위로'를 느끼게 하죠.

 

 

깁슨 경정은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피해자'를 미리 배려해 기자회견 발표문을 수정합니다. 그러면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말을 합니다.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 혹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밤길에 술을 마시고 걷다 살해당한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러게 좀 조심하지 그랬어!'라고 말합니다. 가해자의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범죄, 혹은 가해자의 의도적 범죄를 비판하기 보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라는 명제에 더욱 집착하며, 자신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서툴게 휘두릅니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비수(날이 예리하고 짧은 칼)가 되는 줄 모른 채 말이죠.

 

드라마 속에서도 경찰 관계자들은 피해자의 행동에 집착하죠. 피해자의 잘잘못을 따지고 들고 무의식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표현을 드러내죠. 하지만 깁슨은 이런 잘못된 관점을 지적합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인물을 드라마로 보게 되면, 위로받은 느낌이 듭니다.

 

 

 

깁슨은 불특정다수에게는 차가울 수 있는 인물이지만, 인간애만은 잃지 않고 사는, 인물입니다. 마음 안의 끓어 오르는 열정을 과시하지는 않지만 그 열정으로 인간애를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차갑고도 따뜻한 깁슨 형사의 행보를 주의깊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 드라마에는 굿와이프에서 섹시하고 유능한 조사관으로 나왔던 Archie Panjabi가 등장합니다. 굿와이프와는 완전 반대되는 느낌의 인물이라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했어요.

The Fall 스틸컷(출처: IMDB) Archie Panjabi

기회가 된다면 꼭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저도 2~3시즌까지 보다 말았는데, 기회가 되면 1시즌부터 정주행하고 싶은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총 4개의 시즌으로 제작되어 방송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년 7월, N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상당부분 수정하여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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