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사심 듬뿍 드라마에 관한 잡담

한드, '너의 노래를 들려줘(2019, KBS)' - 연우진 배우를 보며 하는 잡담.

사라뽀 2023. 11. 2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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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표현이긴 하지만, 입에 익어서 쓰는 '버닝'. 그래, '버닝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연우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 한 번 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건, 어디선가는 '좋게' 봤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 정도. '아 반드시 봐야 돼!'라는 생각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아서 사실, 이 사람이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를 다 본 적이 없었다.

 

 

넷플릭스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그러다가, 최근에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봤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도 연우진이 '아, 진짜 멋있어!' '최고야!' '빠져버리겠어!' 뭐 이 정도로 좋지는 않았던 것인데...  워낙 드라마 내용이 탄탄해서 각각의 배우들보다는 전체 작품의 완성도와 이 작품이 품고 있는 '마음'에 크게 감동했고 그래서 거기 나오는 모든 배우가 몹시 사랑스러웠을 뿐이었는데, 어찌되었든 간만에 설레는 기분이 좋았던 탓에 '연우진'이 나왔던 다른 드라마를 하나 보기로 했다. 마침, 이것도 무슨 알고리즘인지 아니면 넷플릭스 드라마로 연우진의 인지도가 좀 더 올라가서인지 몰라도 마침, 웨이브에서 KBS 드라마 한 편을 대문짝에 떡하니 박아 놓았길래, 시놉 좀 읽어보고 끌리는 소재라 이틀에 걸쳐 16부작 혹은 32부작짜리 드라마를 모두 봤다.

 

물론, 나는 지금 드라마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럼 지금 하는 얘기는 무슨 이야기?) 그냥 개인적인, 잡스러운 마음을 남겨 놓고 싶어서 끄적이는 것. 원래 이런 잡스러운 이야기는 '네이버 블로그'의 차지였는데, 오늘 네이버 쇼핑에서 소형 온열기를 사려다 기분이 잡치는 바람에, 블로그에 인공호흡하려던 계획과 의지, 의욕도 모두 꺾이고 말았다. 덕분에, 죽어가던 '티스토리 드라마 블로그'에 허술한 '게시판' 하나를 신설하고, '잡스러운 소리'를 늘어 놓기로 결정! 그래, 나는 사실 말이 많은데 말을 할 데가 없어서 블로그를 했는데, '말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그 좋아하는 말을 전혀, 아니 거의 못하고 '말을 잘 하게 될 때까지 드라마를, 또는 영화를 반복해서 보고 이것저것 책들을 참조해서 정말 그럴싸한(?) 포스팅을 할테다!'라고 하는 전투적인 생각의 감옥에 갇혀서 '제목'만 죽어라고 적어 놓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제 겨우 '숨'이 트이게 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뿌듯하다. 아무튼 각설하고, 여하간.

 

 

wavve - 너의 노래르 들려줘

 

 

'너의 노래를 들려줘'라는 드라마를 모두 봤다. 아마, 이 드라마가 공개되었던 해에,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세정이'가 나온 걸 봤던 것 같고, 그래서 '저 드라마 한 번 봐야겠는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세정이는 '경이로운 소문'의 역할이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잠깐 이 드라마를 본 적도 있는데 세정이, 그러니까 극 중 이영이가 각목에 머리를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누워 있는 장윤(장도훈, 연우진 分) 곁에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왜인지, 그 장면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는데 내용을 모르니, 그냥 남자친구 옆에 앉아 있는 여자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 장면엔 많은 드라마가 담겨 있었다. 아무튼.

 

드라마는 최근 본 드라마 중 가장 애틋하고, 뭐랄까 다소 '신파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였나? 화끈한 남성과 순종적인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서, 남성이 막 리드하고 여성은 감동하고 그 둘 사이를 가로막는 뭔가 '운명적인 장벽' 같은 것이 있어서 막 애절해지는 뻔한 감정들이 점철된 드라마들. 그런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신파적 감수성. 그래서 이영이는 너무 어리석고, 너무 답답해 보여서 복장이 터졌고, 더러 어떤 사건들은 너무 작위적이기도 했지만 배우들이, 정말이지 '모든' 배우들이 놀라울 만큼 연기를 잘했고, '사람'을 생각하고,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 절절히 전해져서, 보는 순간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더랬다. 박지연은 그 유니크한 '미모' 때문에 '티아라' 멤버인 것은 알았는데, 배우로서의 '딕션'이 거의 '최고', 아니 '완전 최고'였다. '이 아까운 배우가 도대체 왜, 잘 안 보이는 거지?'라는 생각, 속상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정말이지 좋은 배역이자 좋은 연기였다. 

 

그리고 악역이 등장하지만 대체로 인물들은 선한 의지를 갖고 있어서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밉지 않았다. 밉지 않은 배역들을 많이 만드는 것은 작가의 재주다. 사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캐릭터가 극단화되어 있고, 내면이 부족한 경우도 많아서 등장인물을 고루 좋아할 수 없게하는 부분이 많은 편인데, 이 드라마는 따뜻했다. 하다못해 '조연들'도 모두 생동감 있고 '자신'을 전달했다. 아주 당당하고 멋있게.

 

아, 나 연우진 얘기를 하려고 했었지.

이건 진짜,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다. 

이 사람의 얼굴, 사실 내가 좋아하는 얼굴은 아니다. 이렇게 하관이 좁고 입이 작은 남자는 섹시하지가 않아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게다가 이마까지 좁다. 얼굴은 왜 이렇게 검은지? 원래 검은가? 오글거리는 드라마 '내성적인 보스(tvn, 2017)'를 잠깐 보니, 거기선 또 완전 동안이어 가지고 비교도 안 되고. 아무튼 정말이지 '내 기준에서' 남성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인물인데, 그러니까 진짜 시선을 압도하는 '외모'는 아닌 것 같았는데, '그 눈빛'. 어딘가를 분명하게 바라보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 눈빛이, 그 모든 '어딘가 좀 아쉽다는 느낌'을 상쇄해 버린다. 사실 딕션이 나쁘지는 않지만, 말이 너무 빨라서 아쉬울 때가 있었고, 또 되게 '고집스럽다'는 느낌마저 주었는데, 이 빠른 말투를 '음색'이 커버한다. 뭐랄까, 이 사람은 자기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준달까? 극중 인물이 아니라, 그냥 그 자신이 드라마 안에서 살아간다는 느낌. 그래서 몰입된다. 

 

나는 감독들이 '백지 같은 배우', 혹은 '도화지 같은 배우'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연우진은 나에게 '백지 같은 배우'다. 자기 얘기를 하듯 자연스럽게 연기하지만, 뚜렷하게 색이 있진 않은 배우. 그게, 배우에게는 찬사라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처음으로 어떤 배우에게 '색을 입혀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쓰던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이 사람이 등장하면 어떨까? 너무 알맞는겠는데? 이런 생각. 옷을 바꿔 입듯이 이 배우, 저 배우를 다 대입해서 상상해 본 일이 있지만, 알맞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어쩐지 이 사람은 내가 쓰는 글 위에서, 그 자신처럼 움직일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몸에 딱 맞을 것 같고, 또 그것이 그에게 색을 입힐 것도 같다. 그래서, 관심이 간다. (물론, 시나리오건 극본이건 소설이건 안 쓴지 너무 오래... 그래도 덮어 뒀던 페이지를 펼쳐, 다시 글자를 입히고 싶은 욕구가 살아난다면?)

 

이 사람은, 실제로 살짝 내성적인 편이라고 하는데...

 

내성적이란 건, 어떤걸까?

돌이켜 보면 나는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 오빠는 내성적이어서 수퍼에서 새우깡 하나를 제대로 못 샀지만, 나는 오빠 대신에 수퍼에 가서 당당히(?) 새우깡을 사왔고 인사성도 바른 아이어서 어딜 가나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인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매'로 다져진 습관이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엄밀하게 말해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 친해지자고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가 미취학 아동일 때에도, '혼자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하지만, 나에게 친구가 없었던 건, 이사를 자주 다녀 친구 사귈 틈이 없었던 데다 내가 아파트에 살지 않는 아이여서였을 뿐 나 자신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거나,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는 아니었을 것 같다. 나는 중학교 이전까지는 '욕망'이란 걸 가져 본 일이 없으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하고 싶다거나 하는 감정이 없는 아이가 '혼자 있고 싶어' 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이렇게 장황하게 내가 내성적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일전에 만난 한 사내 아이 때문이다.

 

그 애는 사실, 연우진과 꽤 많이 닮았다. 돌이켜 보니 그랬다. 내가 만난 남자 중에 가장 '이기적인 아이'였고, 하관이 좁았으며 미남형이었다. 얼굴은 뽀얗게 하얬고, 말수가 적었다. 돌이켜 보면 치욕적이지만 그래도 가끔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내가 이 남자 아이의 마음의 속도에 발을 맞추지 못해서, 내가 먼저 튀어 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상상일 뿐이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본인'만 생각하는 인물이었을 뿐이니. 속도를 운운하는 건, 그냥 얄팍한 자기연민.

그래도, 그럼에도불구하고 문득, 이 친구를 떠올리면 내가 '내성적인 사람'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손쉽게, '내면이 없는 사람'이라고 속단하는 버릇이 있었던 건 아닐까? 음성으로든 활자로든 인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어서. 다문 입술 안에, 내가 모르는 무수한 단어들이 담겨 있을 수 있는데, 그 말이 쏟아져 나오는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섣불리 뛰어 나간 시간들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또는 그 단어를 발음할 줄 몰라, 담아만 두는 사람도 있을텐데 나와 다른 언어를 쓴다며 귀를 닫아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나는 과거에나 지금에나 마찬가지로, '나의 언어'로만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걸 좋게 포장해 말하면 '고독'일 수 있을까? 하지만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 그렇다면 나는, 세계의 언어를 여전히 습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결국, 거울을 보고 독백을 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 하는 그런 절망적인 중얼거림을 반복한다.

 

내성적이란 건 뭘까? 내면이란 뭘까? 진심어린 마음이란 건 또 뭘까?

 

어쨌든, 이 사람 연우진은 내가 끝내 사랑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 사람이 아니라 연우진이라면? 혹은 실제의 연우진은 드라마 속의 다정한 인물과는 다르게 사실은 의도치 않게 '전달되지 않는 마음'을 품고 있다 내게 오해를 사고 미움을 받는 그런 사람일 수도 있을까? 그런 쓸쓸한 상상이 슬쩍 깃들기도 한다.

 

인간은 참, 순간순간 다르고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드라마'는 늘 '소화제'처럼 관계의 쳇기를 내리게 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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