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미국드라마

[미국드라마] 보스톤 리갈(Boston Legal, 2004~2008) - 괴팍스럽고 재미있는 법정드라마

사라뽀 2023. 4. 2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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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 리갈(Boston Legal)은 「Crain, Paul & Shmidt」 로펌 변호사들의 재판 드라마입니다. 중심이 되는 두 인물이 앨런 쇼어 Alan Shore(James Spader)와 데니 크레인 Denny Crane(William Shatner)입니다.

 

로펌 간판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 외에도 로펌의 주인인 Paul Lewiston(Rene Auberjonois)와 Shirley Schmidt(Candice Bergen) 등이 있죠.

The Practice 스틸컷

■ The Practice의 스핀 오프 드라마 'Boston Legal'

앨런 쇼어(Alan Shore)는 더 프랙티스(The Practice)라는 또 다른 법정물에 등장했던 인물로, 이 드라마는 말하자면 The Practice의 스핀오프 드라마입니다.(스핀오프 드라마란, 오리지널 드라마에서 파생된 드라마를 말합니다.

 

보통 해당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캐릭터를 따로 떼어 와서 그 인물 중심의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 '스핀오프 드라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Alan Shore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죠. The Practice를 만든 데이비드 K. 켈리(David E. Kelly)가 Boston Legal도 만들었습니다.

Boston Legal 스틸컷

 제임스 스페이더

제임스 스페이더(James Spader)는 브룩 쉴즈 주연의 <끝없는 사랑(1981)>으로 데뷔하였고,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1989년 깐느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저 또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세크리터리>, 그리고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 <크래쉬> 등을 통해서 그를 접했습니다. 그가 맡은 배역들은 어딘지 모르게 기괴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때까지만 해도 연기는 잘 하지만 톱스타의 이미지는 조금 부족했더랬죠. 아마도 그에게 '닥치는 대로 출연'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포스터

제임스 스페이더는 거장 영화감독들의 독특한 영화들에도 출연했지만, 별 주제의식 없는 평범한 상업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습니다. 그래서 이미지 관리 안 하는 배우로 유명했죠. 제임스 스페이더는 "연기는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저는 제임스 스페이더의 이런 태도를, 사실 사랑합니다. ㅎ)

 

그랬던 그가 TV 드라마에 출연하게 됩니다. "더 프랙티스(The Prctice)"라는 법정물입니다. 정통 법정물이었던 이 드라마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방송되었는데 제임스 스페이더는 2003년~2004년 사이 22편에 출연했습니다.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The Practice. 사실 이 드라마에서 앨런 쇼어(제임스 스페이더)만을 가져와 새로 만든 것이 보스톤 리갈이긴 하지만, 두 드라마에 등장하는 앨런 쇼어의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Boston Legal의 앨런 쇼어를 생각하고 The Practice를 보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The Practice에서는 머리칼도 풍성하고 배도 안 나오고... ).

 

그러나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게 있죠. 보스톤 리갈은 이러한 드라마적 출발 선상에 있습니다. 더러운 정의를 쫓는 변호사들이 아니라, 법조인으로서의 진정성을 지키려는 변호사들을 그리려는 취지를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그런데, 뭔가 다릅니다.

 

 앨런 쇼어

이 남자는 더럽게 괴팍하고 추잡하고 야비합니다. 심지어는 이런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기까지 하죠. 그는 신성한 법정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의뢰인을 위해서 비열한 태도도 남김 없이 보여줍니다. 의뢰인의 입장이라면, 그는 최고의 변호사죠. 변호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에서 변호사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고, 법조인들의 진정성 문제, 도덕성 문제로 인해 갈등합니다. 법조인들은 당연히 정당한 방법으로 재판에서 이기려 합니다. 또 그것을 이상적인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앨런 쇼어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도 서슴지 않으며, 자신의 입지나 법조인으로서의 생명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는 몸을 사리지도 않고, 폼을 잡지도 않습니다. 그는 맹렬히 의뢰인을 위해 싸우고, 그리고 평등과 자유를 위해 싸웁니다. 

그는 폭군이며, 결과적으로는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앨런 쇼어는 '법'의 상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앨런 쇼어'처럼 법은 지나치게 외설적이며, 지나치게 정치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 드라마였습니다.

Boston Legal 포스터

 정치적인, 블랙 코미디

지금껏 한국드라마에서 전혀 찾아보지 못했던 '블랙 코미디'를 보스톤 리갈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보스톤 리갈은 미국의 사회상이나 기본적인 정치성을 모르고는 제대로 웃지도 못하는 지독히도 '미국적인 드라마'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3시즌까지 열심히 보다가 중도에 그만 보게 된 적이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3시즌부터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때 이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였습니다. 3시즌 드라마는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 나가기로 결정되었던 무렵에 만들어졌거나 방송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 당시에 이 드라마를 보았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거예요.

 

드라마 에피소드 중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흑인 변호사가 '크레인, 폴, 앤 슈미트 로펌'에 들어오려고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데니 크레인이 흑인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하죠.

 

흑인 같이 말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

 

흑인 변호사는 이 말을 그리 탐탁찮게 느끼죠. '흑인 같이 말하는 것'을 전제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흑인 같이 말한다는 것

이 에피소드는 버락 오바마가 흑백 혼혈이라는 점, 흑인이지만 백인 사회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는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의 지지까지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시에 대한 실망도 있겠지만, 흑인임에도 백인 같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는 거지요. 보스톤 리갈은 흑인 변호사라는 한 인물을 통해(심지어 버락 오바마도 법조인 출신) 버락 오바마의 입지를 설명해주려 한 것이죠. 그리고 미국사회가 '흑인 대통령'을 뽑았다고 자축하며, 미국의 인권 의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Boston Legal 포스터

어찌 보면 그냥 흑인 이야기 같고, 공공연하고 뿌리 깊어 보이는 흑백차별 이야기같지만 실상은 한 정치인에 대한 내포적 의미와 정치 풍자가 숨겨져 있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보스톤 리갈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노골적으로 정치 풍자를 하고 그게 세련되었다는 것, 그것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화합과 소통을 꿈꾼다.

이 드라마에서 민주당 지지자인 앨런 쇼어와 공화당 지지자인 데니 크레인은 이야기의 중심 축을 맡고 있습니다.

흑인 같이 말하는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니 크레인, 그는 유색인종에 대해 전형적인 차별 의식을 갖고 있는 정통 보수파 인사입니다. 그는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자신의 차별은 당연한 거라고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독불장군 같지만,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설득이 되기도 하죠. 막가파 공화당 인사 데니 크레인과 자유를 위한 권리를 중요시하는 민주당 인사 앨런 쇼어가 이 로펌에서 가장 절친한 사이란 점은, 아이러니입니다.

 

그들은 전혀 다르지만 인간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결국 결혼하게 되며(응??) 협력과 화해, 공존과 이해로써 함께 나아갑니다. 이것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정치적 이상향인 것 같습니다.

Boston Legal 포스터

이들은 정치적 색채를 강하게 뿜어내지만 좌우의 균형을 잃지 않고, 그들의 가치관을 통해서 사회 질서의 유지와 권리 회복을 논하죠. 망나니들의 법정쇼 같은 이 드라마,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치, 행정이라든지 제도에 희생 당하는 개인이나, 자유를 침해 당한 개인에 대한 따뜻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든지, 인간의 초법적 권리에 대한 강렬한 믿음을 드러낸다든지 하는 '사회적 지향점'을 반드시 지켜나간다고 하는, 전통적인 법정물의 큰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법조인의 이상향'을 드러내는 드라마였습니다.

 


2010년에 써서 티스토리에 올렸던 글을 2022.5.22 수정해서 올립니다.

글에 시차가 있음을 양해부탁드립니다.

 

보스톤 리갈은 2023년 현재, 디즈니+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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