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드라마] 메이의 집사(2009) - 변화된 여성 판타지
메이의 집사 2009년 1분기 드라마
어릴적에 '소공녀'란 책을 본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꿈꾸어 보았을 법한 "환타지", '내 진짜 아버지는 부자"라거나,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먼 친척쯤 되는 사람이 때부자"여서, 공주 대접받으며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그런 생각 해 봤을 겁니다. '내가 이 소설 속의 소공녀라면 어떨까'하는 꿈을, 이 드라마가 실현해 보여줍니다.

가난한 우동 가게의 외동딸이 양친을 잃은 뒤, 대부호인 할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1년 등록금 1억엔을 호가하는 초세레브한 요조숙녀 육성 여학교에 입학하여 잘생긴 집사와 같은 기숙사에 살며 생활하게 된다는 초~환타지 드라마인데요,
money에 대한, 화려한 생활에 대한, 그리고 잘생기고 헌신적이기까지한 남자에 대한 환타지까지 여자들의 온갖 환타지가 뒤엉킨 초울트라스펙터클환타지를 제공합니다.
틴에이저를 위한 드라마가 이 정도로 호들갑스럽게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장된 이미지로 점철된 드라마였는데요. 교정 밖으로 나가려면 헬기가 필요할 정도로 광대한 토지를 자랑하는 학원, 매 식사시간에는 초호화 음식이 차려지는 학원... 왜 이런 이미지들이 '관심'을 받게 되는 걸까요? 왜 이런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될까요? 우리 모두,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인가요?

'로맨스 소설'의 역사에는 여성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소유물처럼 취급받았지요. 자유 연애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억압적 결혼을 한 여성 중에는 '불륜'을 저지르는 이들도 있었죠. 남자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습니다. 돈 많은 남성, 지위가 있는 남성이 아니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이런 온갖 억압들의 해소를 위해 생겨난 것이 로맨스 소설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판타지는 여성에게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숨통'을 트이게 합니다. 그리고 여성은 이런 소설을 읽으며, '순결한 사람'이 되도록 '학습'하죠. 그래서 로맨스 소설은 기본적으로 '계몽 소설'로써 쓰여졌다고들 합니다. 여성이 체제 속에 순응하며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제공된 '사탕' 같은 것이죠.
현대의 로맨스 소설은 이런 억압을 깨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드라마도 어떤 면에선 그런 결 위에 있을 겁니다. 메이는 이 등신같은 요조숙녀 육성 학교 성 루치아 학원에서 다른 여학생들의 '억압', '핍박'을 받으며 생활하니까요. 게다가 그녀를 보조하는 '젊은 남자 집사'는 현대의 '위계'가 명예나 지위보다는 '돈'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걸 상징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부자 남성을 좇던 여성들은 이러한 환타지를 통해서, '가난하지만 잘생긴 남성'을 '부유함'을 무기로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프리티우먼의 역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성 대상의 콘텐츠들이 여성 상위의 스토리 구조를 만들어내는 일은, 오늘내일의 일은 아닙니다. 최근 한국드라마의 경향도 이런 결 위에 있습니다. 잘 나가는 여성 커리어우먼과 남성 신입사원과의 로맨스가 많이 등장했지요.(대표적으로 www)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과하게 설정된 부유함'은 '부유함'에 관한 '풍자'일지도 모르겠어요. 이걸 보며 시청자들은 어떤 걸 느낄까요? '와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느낄 거예요. 실제로 어떤 방송인은 '우동'을 먹기 위해 '일본'에 간다고 하죠. 돈이 있다면 누구나 해 보고 싶은 '낭비'
하지만 '풍족함'과 '부유함' 속에는 '규율'이 존재하고, 억압이 존재하며, 그것을 누리기 위해선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습니다.
10년전에 쓴 글에선, 이 드라마를 '낭비적 상상력'이라고 비난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모든 과잉은 풍자적 효과가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해서, 첫 문단 빼고 모조리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돈, 돈, 돈, 돈 하는 요즘 세상에,
'부유함'이란 뭘까, 생각해 보게 합니다.
더 좋은 가치란 뭘까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요?
묻게 되네요.
2010년에 쓴 원안은 전체적으로 수정하여 2022년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티스토리로 다시 옮깁니다.